인류 최고의 천재이자 최고의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그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파헤쳐 봅니다!
사실 아인슈타인은 워낙 유명한 인물인 만큼 일화도 많기에
이 영상에서 다루지 못한 다른 독특한 일화들도 많습니다.
이 영상의 일화들은 순전히 제 주관적인 흥미 위주로 구성했으니 참고해주세요 :)
1. 어릴 적 공부를 못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물리학자이자 현대 물리학의 아버지인 아인슈타인, 그는 지금까지도 천재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런 아인슈타인이 어릴 적엔 공부를 잘 못했다는 일화가 종종 떠도는데요. 이는 잘못된 사실이며 사실 아인슈타인은 어릴적부터 공부를 겁나게 잘했습니다.
그는 1점부터 6점으로 평가받는 스위스의 고등학교 졸업 시험에서 수학과 물리학 분야에서 모조리 최고점인 6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독일의 성적 표기는 점수제가 아닌 등급제로 이 성적표를 본 독일 사람들이 일부 오해를 했던 거죠. 점수제가 아닌 등급제로 오해하여 6등급, 즉 낙제 등급을 받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것이 와전되어 마치 어릴적 공부를 못한 낙제생이었다는 일화가 떠돌게 되었습니다.
아, 물론 낙제를 한 적은 있긴 했는데… 대학 시절 기초물리학 실험 수업에 출석을 자주 빼먹어서 낙제를 했다고 합니다. 뭐… 기초물리학이 너무 시시했나봅니다.
2. 인생 사진
아인슈타인은 헤어스타일, 표정, 주름, 눈빛 등 독특한 외모가 주는 천재의 이미지 덕분에 대중들에게도 얼굴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사진들이 남아있는데 특히 이 혀를 내미는 사진은 아마 전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메롱사진 아닐까요?
아인슈타인의 72세 생일파티가 있던 날 사진기자들이 끈질기게 포즈를 요구했고 평소에 사진찍기를 귀찮아하던 아인슈타인은 심드렁하게 차에 올라 문을 닫았습니다. 대부분의 사진 기자들이 멋진 사진을 담는 것을 포기하고 돌아가고 한 명의 기자만이 남아서 끝까지 기회를 노렸는데요. 이 때 아인슈타인이 갑자기 창문을 내리고는 혀를 내밀었던 것입니다.
그의 괴짜스럽고 탈권위적인 모습이 잘 담겨있는 사진이 나온거죠. 그리고 이 사진은 그 해 뉴욕 신문사진작가상 그랑프리를 수상하고 수없이 복제되며 세기의 걸작 사진이 됩니다. 아인슈타인 본인도 이 사진을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사진 기자에게 9장을 프린트해달라고 요청하여 친구들에게 보내주곤 했습니다. 그 중 한장은 2009년에 경매에서 7만 달러가 넘는 금액에 낙찰되기도 했습니다.
3. 대리 강연
아인슈타인이 노벨상을 타고 인기가 높아지자 대중들을 상대로 강연회를 자주 열게 되었는데요. 이를 귀찮아하던 아인슈타인은 하루는 자신의 운전 기사에게 자신과 비슷하게 분장을 하게 한 다음에 어차피 저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를테니까 나보다 말재주 좋은 네가 강의해라, 라고 하면서 실제로 운전기사에게 대리 강의를 시켰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수준 높은 질문이 들어오게 되면 "이건 내 운전 기사도 풀 수 있는 문제다” 라는 말과 함께 운전 기사 복장을 하고 있단 진짜 자신을 불러내 문제를 풀게 했죠.
이와 같은 이야기가 막스 플랑크 버전도 있는데요. 어떤 버전이 진짜인지는 공식 기록이 존재하지 않기에 알 수 없지만 여기서 유래한 ‘운전자의 지식’ 이라는 말은 현재까지도 잘 모르면서 아는척만 하는 지식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4. 직장 생활
아인슈타인의 첫 직장은 특허청 심사관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그보다 먼저 보험회사에 취직하여 다녔던 적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지도교수가 그의 자만심과 불성실한 태도를 싫어해서 추천서를 써주지 않아 물리학 쪽으로 취직자리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보험회사의 일이 따분하고 월급도 적었던 그는 투잡을 뛰기 위해 과외 알바를 시작하는데 이 때 냈던 광고문이 바로 이것입니다. 세계 최강의 과외 전단지로 유명하죠. 그러나 그는 이 알바때문에 상사와 다투고 보험회사에서 해고당하여 한동안 실업자 신세를 겪게 됩니다.
실업자 신세를 겪고 있던 아인슈타인의 대학 동창이자 빵빵한 가문 출신이었던 마르첼 그로스만이 백수인 아인슈타인을 돕기 위해 아버지 빽으로 특허청에 취직을 시켜줍니다. 소위 말하는 낙하산 인사, 바로 고위공무원 부정 청탁을 통해 특허청에 취직하게 되는거죠. 참 현재까지의 행보만 보면 물리학 영재가 본인 재능 믿고 학교 불성실하게 다니다가 어떻게 인맥빨로 괜찮은 일자리 하나 구한것처럼 보이는데요.
특허청 심사관 일을 하는 몇년동안 근무 외 자투리 시간동안 그는 세상을 뒤집을만한 놀라운 업적을 세우게 됩니다. 특히 1905년에는 5편의 논문을 연속으로 발표하는데 그 중 3편은 하나 하나가 노벨상 급이라 평가받는 엄청난 논문이었습니다. 바로 브라운 운동, 광양자 가설, 특수 상대성 이론이죠. 세 가지 논문 모두 후대 물리학의 세부 학문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중에서 광양자 가설은 1921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습니다.
5. 근친 재혼
물리학에서 엄청난 업적을 세우고 존경받는 그이지만 한 인간으로서는 존경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결혼생활이었습니다. 그는 두 번의 결혼을 했는데요. 첫번째 부인 밀레바와 결혼하고, 16년 뒤에 이혼 후 두번째 부인 엘자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위인전이나 교과서에는 연구에 몰두하다 보니 가정에 소홀해서 첫번째 부인인 밀레바와 이혼했다는 정도로 적혀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 하지만 실상은 그가 제 1차 세계 대전때 중립국으로 피신해있던 도중 엘자라는 여성과 바람이 나서 밀레바를 저버리고 두번째 결혼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그 엘자라는 여성은 바로 이종사촌 누나였다고 하는데요. 지금의 정서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 당시에는 친척간 혼인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나봅니다. 게다가 이혼 후에 자식들에게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서 밀레바는 홀몸으로 고생하며 두 아들을 키우며 살았습니다. 어느 날 지적 장애를 앓고 잇던 둘째 아들이 발작을 일으키며 밀레바를 공격했고 이 일로 인해 평생 정신병원에 수감된 채로 살다가 죽었습니다.
이처럼 모두에게 존경받는 아인슈타인이라 할 지라도 인간적인 부분에서는 도저히 쉴드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결혼생활과 가족관계였습니다.
6. 이스라엘 대통령
유대인이었던 그는 이스라엘의 대통령직을 제안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이 나치로부터 온갖 시련과 고난을 겪은 이후에 건국된 나라이며 건국 후 초대 대통령 자리에 누가 좋을 지 고민 끝에 학계에서 전설적인 존재이자 같은 유대인이었던 아인슈타인을 선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은 정치적으로도 활발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인물이긴 했습니다. 1900년대 초부터 지적 자유, 인종차별, 원자폭탄 등등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견해를 표현하는 것을 아끼지 않았거든요.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이를 사양했습니다. 본인에겐 사람을 다룰만한 능력도 경험도 없으며 정치가 물리학보다도 더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7. 뇌
아인슈타인의 뇌는 현재까지 보관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죠. 그의 뇌는 생각보다 크기가 크지 않지만 공간지각이나 수학 등을 담당하는 두정엽은 일반인보다 15~30%가량 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뇌에 얽힌 황당한 일화가 있는데요. 아인슈타인은 원래 본인이 죽은 뒤에 화장하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체 부검을 맡았던 프린스턴 병원의 하비 박사는 그에게 생전에 동의를 구한 적 없이 무단으로 그의 뇌를 적출하여 240조각으로 잘라내어 보관해 둔 것입니다.
상상해보면 너무 끔찍하고 그로테스크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당연히도 이 사실이 알려지자 하비 박사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으며 그는 과학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맞서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는 한때 국내 TV 프로그램인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룬 적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연구를 위한 목적이라 할지라도 당사자의 동의 없이 신체의 일부를 적출하는 건 좀 아닌것 같네요.
8. 연구 인생의 오점
그의 광양자 가설은 많은 물리학자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여 양자역학 태동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하니하게 아인슈타인은 죽을때까지 양자역학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라는 말로 유명한 그는 모든 상태가 확률로 결정되는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을 끝까지 지지하지 않고 젊은 과학자들과 대립하기도 합니다. 또한, 말년을 통일장 이론 연구에 바쳤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기도 했으며 중력방정식을 우주 전체에 적용시키기 위해 우주상수를 도입해서 연구하다가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로 우주상수 개념을 폐기하기도 하죠.
하지만 과학은 수천 수만번의 잘못된 접근을 통해서 단 하나의 올바른 접근을 찾아가는 과정이고 그가 이룬 엄청난 업적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상 인류 최고의 천재라 불리우는 아인슈타인에 대해서
당신이 몰랐던 9가지 사실들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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